반응형
한 개의 문장은 어떻게 완성되어야 하는가. 유창한 문장은 어떤 문장인가. 같은 조사가 반복되는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잘못된 복문이나 중문은 어떤 것인가. 단문으로 쓸 경우 어떤 효과가 있는가. 초보자는 왜 단문부터 쓰는 버릇을 들여야 하는가.
단문은 어떤 효과가 있는가. 속도감이 있다. 그림에서의 점묘처럼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대신 밀도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문장의 밀도 공부를 했다. 그 짧은 앞문장과 뒷문장, 또 그 뒷문장은 어떠한 고리로 이어져야 하는가. 어떻게 이어지면 밀도가 떨어지고, 어떻게 이어지면 밀도가 있는가.
가능한 접속사를 사용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음에 나는 문장이 평면적인 것이 큰 불만이었다. 물론 담백한 맛이 있는 음식은 그 나름의 맛깔스러움을 간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홑이 아닌 겹으로 직조하고싶기도 했다.
다음의 불만은 부사와 형용사가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비유법의 묘미를 터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형상화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표현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불필요한 형용사나 부사를 남발하게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비유법을 동원함으로써 극복하기 시작했다.
그는 두려워서 벌벌 떨었다의 경우에 그는 높새바람에 산파래 떨 듯했다는 투로 써보았다. 묘사적인 서술을 통해 단조로움과 건조함을 극복해 갔다.
(.....)
나는 다시 단문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그 단문을 쓰되, 내가 노렸던 선인들의 나긋나긋한 정서가 배게 할 수는 없을까 하고 고심했다. 문장은 얼마쯤은 거짓으로 그럴듯하게 꾸며 쓸 수 있다. 드렇지만 오래지 않아서 쓰는 사람의 가짜 체취와 꾸민 숨결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좋은 문장은 제작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인격체)에게서 향기와 같은 것이다. 그 문자의 향기가 소설을 향기롭게 하고, 그 향기는 사람 그 자체인 것이다. 그 작가의 총체적인 어떤 것이다.
물론 좋은 소설들을 읽어야 하고, 선인들의 철학 서적을 읽어야 하며, 불교 경전이나 노장이나 삼경을 읽어야 한다. 좋은 시들을 읽어야 하고, 좋은 음악들을 읽어야 한다. 그것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비롭고 넉넉해지는 마음 가지기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문장이 터럭 하나라면 그것은 아홉 마리의 소를 대표하는 것이다. 아홉마리의 소는 사람이고, 하나의 우주인 것이다.
- 한승원, 장하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문장> 재인용
더욱이 글쓰기 교본까지 낸 필자이고 보면, 문장술, 표현술에 꽤나 고민하고 있음을 읽는다. 마지막의 하나의 문장, 그것은 구우일모九牛一毛다. (장하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문장> 126쪽)